동구릉(東九陵)의 늦가을
2013년 11월 7일
맑음
경기도 구리시 소재 동구릉을 오랜만에 찾았다.
아이들 어릴적이니까 25여년은 되나보다.
관람 순서는 오른쪽으로 돌아서 왼쪽 숭릉을 마지막으로 돌았다.
<수릉>
조선의 24대왕 헌종의 아버지 문조와 신정황후 조씨의 합장릉이다.
<현릉>
조선 제5대 임금 문종과 현덕왕후 권씨의 능
문종은 세종의 맏 아들로 훈민정음 창제를 도왔다.
<건원릉>
조선의 태조 이성계의 능
태조는 1392년 7월 17일 개경의 수창궁에서 왕위에 올랐다.
7년간 왕위에 있으면서 나라 이름을 조선으로 정하고
도읍을 지금의 서울인 한양을 옮겼다.
봉분위엔 잔디가 아닌 억새풀이 덮였는데
이는 고향을 그리워하는 태조를 위해
고향 함흥에서 가져온 흙과 억새로 봉분을 덮은 때문이다.
<목릉>
조선의 14대 임금 선조와 원비 의인왕후 박씨, 계비 인목왕후 김씨의 능이다.
서쪽 능침이 선조, 가운데 능침이 의인왕후, 동쪽의 능침이 인목왕후의 능이다.
선조는 16세에 왕위에 올라 이이, 이황등의 인재를 나랏일에
힘썼으나 당쟁으로 국력의 약화로 두 번의 임진왜란을 겪었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승리로 이끌어 선조라는 묘호를 받았으며,
이 시대에는 훌륭한 인재들이 많이 배출되어 목릉성세라고 일컬어졌다.
이이, 이황, 이덕형, 이항복, 이순신 등이 이 시대의 인들이다.
▲ 선조의 능
▲ 선조와 의인왕후 능
▲ 의인왕후 능
▲ 인목왕후 능
<휘릉>
조선의 16대왕 인조의 계비 장렬왕후 조씨의 능이다.
장렬왕후는 효종, 현종, 숙종때까지 4대에 결쳐 왕실의 어른으로 지냈는데,
후사가 없었다.
▲ 현장체험 학습 나온 유치원생들
<원릉>
조선 21대왕 영조와 계비 정순왕후 김씨의 쌍릉
영조는 52년의 재위 기간 동안 탕평책, 균역법 등 많은 업적을 이루었지만
아들 사도세자가 붕당정치의 희생자가 되는 비운을 겪기도 했다.
15세에 영조의 계비가 된 정순왕후는 사도세자의 죽음에 빌미를 제공하였고
어린 순조가 즉위하자 수렴청정을 하였다.
<경릉>
조선의 24대 왕 현종과 원비 효현황후 김씨, 계후 효정왕후 홍씨를 함께 모신 능으로
조선시대의 유일한 삼연릉(三連陵)이다.
현종은 8세의 어린 나이에 즉위하여 대왕대비 순원왕후 김씨가 수렴청정을 하였다.
헌종은 학문을 좋아하고 글씨를 잘 썼으나 수렴청정으로 인한 안동 김씨의 세도정치로 어려움을 겪었다.
후사가 없어서 강화도령으로 알려진 철종이 뒤를 이었다.
<혜릉>
조선 20대 왕 경종의 비 단의왕후 심씨의 릉
<숭릉>
조선의 18대 왕 현종과 원비 명성왕후 김씨를 모신 쌍릉이다.
현종은 예론을 둘러싼 정쟁에 시달렸으나 조선 왕조의 질서를
확립하였으며, 북벌계획을 중단하고 훈련대를 창설하는 등
군비 증강에 힘썼다.
또한 국가재정을 안정시키기 위해 대동법을 실시하였고
동철활자를 주조하였다.
숭릉의 정자각은 팔작지붕으로 다른 능에서 볼 수 없는 특이한
형태로 정면 3간, 측면 2간에 익랑이 붙어 있다.
<풍경>
단풍이 거의 다 떨어지고 일부분만 남아있다.
▲ 현장 체험학습 나온 원생들
오늘은 평일이고 대학 수학능력시험일이라 그런지
관람객이 별로 없다.
유치원생들과 몇 몇 관람객들이 보인다.
늦은 가을이어서 분위기가 썰렁하다.
단풍도 거의다 떨어지고...
한 때는 나라를 이끌며 조선을 다스리던 왕들
이제 말없이 누워있다.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
임진란을 겪은 선조 등등
아홉개의 능이 있어 동구릉이다.
억새가 자라는 태조 이성계의 묘가 특이하다.
고향을 생각하는 마음이 느껴진다.